착안대국 착수소국

 

며칠 전 한 인터뷰 기사에서 '착안대국, 착수소국'이라는 바둑 용어를 보았습니다. 대국적으로 생각하고 멀리 방향을 보되 착수할 때는 국지적 형세를 잘 살펴 수를 둬 승리한다는 뜻이랍니다. 경영자에게는 망원경과 현미경이 필요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젊었을 때 바둑을 좀 배워 둘 것을 잘못했습니다.

 

내일을 전망하는 망원경과 정확하고 세밀하게 오늘 일을 수행할 현미경은 경영에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생존 단계를 넘어서면 회사는 사업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오늘만 밥 먹고 사는 게 아니라 내일도 잘 살아 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눈 앞에 다가와도 이룰 수 없습니다.

 

지난 해에 수처리, 에너지, 멤브레인으로 되어 있던 전통적인 사업부 구조를 Team Tomorrow와 Team Today라는 두 개 조직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아무리 미래에 대한 준비를 강조해도 사람들은 목전의 사업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학에 나오는 현시선호 이론이 딱 들어 맞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예 미래를 준비하는 팀을 분리해서 그 일만 주지 않으면 변화를 이루어 내기가 그리 녹녹치 않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Team Tomorrow는 미래 어느 시점의 오늘을 책임질 혁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므로 0에서 1을 만드는 곳입니다. 그러나 Team Today는 오늘 Team Tomorrow까지 먹여 살려야 하므로 1에서 100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지금 오늘팀의 주력 제품인 BBF, FMX, AMX가 얼마 전까지 미래 기술로 불렸던 것이 새삼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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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들 중 절반 이상이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공유했고 다행히 이게 우리 회사의 중요한 DNA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인데 최근 개인적으로 역할에 많은 혼란을 겪었고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마케팅에 집중하며 오늘에 주력해야 할 미국 법인에서 내일을 논하거나 미래를 준비하는 대목에서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는 일이 반복되었지요.


지금은 분별력을 유지하려고 무지 노력 중입니다. 망원경을 잘 쓰는 경영자는 현미경을 잘 쓰는 사람을 옆에 두어야 하며 반대의 경우도 보완을 해야 한다는 진리도 결국 경영자의 균형감과 능력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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